마닐라에서 만난 프리퍼들ㅣFWC 2026 현장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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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서 만난 프리퍼들ㅣFWC 2026 현장 취재기

지난 10월 24일, 〈프리프 유니버스〉의 세계 대회인 프리프 월드 챔피언십(FWC) 2026을 취재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의 SM 몰 오브 아시아 뮤직홀을 찾았습니다.

프리프 월드 챔피언십(FWC)

FWC는 〈프리프 유니버스〉의 4대4 PvP 전투를 펼치는 대회입니다. 참가자는 대회 기간에 운영되는 전용 서버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육성하고 장비를 준비합니다. 이후 4명이 한 팀을 구성해 온라인 예선에 참가합니다.

예선을 통과한 6개 팀과 와일드카드 2개 팀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합니다. 총 8개 팀이 4대4 대결을 통해 세계 챔피언을 가립니다.

FWC 전용 서버와 대회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면 이전 아티클도 함께 읽어보세요.

20년 된 MMORPG에 왜 다시 레벨 1이 모일까

▲ 객석부터 위층 난간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관객들로 가득했던 FWC 현장

행사장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객석은 물론 위층 난간까지 관객들로 가득했습니다. 화면으로 지켜보던 대회의 규모를 현장에서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프리프 유니버스〉를 즐기는 사람들을 ‘프리퍼(Flyffer)’라고 부릅니다. 이날 프리퍼들은 관객석에서 친구를 응원하고, 무대에서 경기를 펼치고, 중계석에서 대회를 전했습니다.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고 이곳에 왔는지 들어봤습니다.

무대는 게임 속 시작 마을인 플라리네를 닮아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체험존이 마련됐고, 코스프레어와 스트리머들은 사진 촬영과 사인회로 관객들을 맞았습니다.

게임에서 익숙했던 캐릭터들은 굿즈로도 나와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보던 캐릭터를 키링으로 달고 다닐 수 있다니, 오늘은 게임 속 인벤토리보다 제 가방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오랜 친구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미국 텍사스에서 온 SCHWI는 친구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3시나 4시까지 잠을 미루곤 했습니다. 미국에서 FWC 중계를 보려면 감수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아예 마닐라로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SCHWI는 친구들을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알아봤습니다. 얼굴이 아닌 목소리로 알아본 거예요.

직접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늘 음성 채팅으로 이야기해서 목소리는 알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그 목소리를 듣고, 드디어 얼굴과 연결해보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친해지는 과정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는데, 이제야 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겁니다.

▲ FWC를 위해 미국 텍사스에서 건너온 SCHWI.

SCHWI도 이번 FWC 서버에서 캐릭터를 키운 ‘프리퍼’였습니다. 직접 출전할 생각은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친구들은 작년부터 이번 팀을 어떻게 꾸릴지 계획해뒀어요. 그리고 제가 올해 키운 캐릭터는 소규모 4대4보다는 큰 길드전에 더 잘 맞거든요.

대회가 끝난 뒤에도 친구들과 계속 플레이할 거냐는 질문에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물론이죠. 저와 친구들은 메인 서버로 캐릭터를 옮기고 플레이를 이어갈 거예요. 내년 FWC에는 더 열심히 해서 선수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오늘만큼은 임시 동맹입니다

FWC에서는 평소 라이벌이던 사람들도 같은 팀이 됩니다. 이번에 첫 출전한 FNST가 그랬습니다.

FNST에는 원래 서버에서 서로 다른 길드로 활동하며 경쟁하던 프리퍼들이 모였습니다.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한 자리가 비자, 다른 길드에서 경쟁하던 PONG도 합류했습니다.

첫 세계 대회인 만큼 걱정도 됐지만, 경기 전 서로에게 건넨 말은 단순했습니다.

원래 메인 서버에서는 라이벌이었어요. 서로 다른 길드의 길드장들이거든요. 그래도 결과가 어떻든 오늘은 게임을 즐기자고 이야기했어요.

대회가 끝나면 이들은 다시 원래 서버로 돌아갑니다. 그곳에서는 다시 경쟁자로 마주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닐라에서만큼은 함께 세계 대회에 도전하는 동료였습니다.

▲ 승리 후 함께 기뻐하는 FNST 선수들

길드원 여러분, 카메라 좀 봐주세요!

현장에서는 'PILIPINAS GUILD'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단체 사진을 찍는 프리퍼들도 만났습니다. 사진 속 사람들을 다 세기도 전에, 길드원들이 또 한 번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터 ICESTAH 입니다. 오늘은 저희 길드에서 70명이 넘게 왔어요.

한 길드에서만 70명이 넘게 왔다니요. 단체 사진을 여러 번 찍고 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인원수가 아니라 길드가 만들어진 시간이었습니다.

2008년에 길드를 처음 만들었어요. 거의 20년이 됐네요.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요. 이제는 가족이 됐어요.

2008년에 만들어진 길드는 오랜 시간 프리프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자리가 됐습니다. 그사이 길드원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각자의 일상을 쌓아왔고요. ICESTAH에게 길드원들은 이제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넘어 가족이 됐습니다.

이날 FWC에는 그 오랜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이 70명 넘게 모였습니다. 길드원들과 인사하고 단체 사진까지 찍으려면, 경기 못지않게 바쁜 하루였겠습니다.

▲ 단체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습니다. 길드원들이 들고 있는 시상보드는 FWC 현장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길드에게 주는 스페셜 보상입니다.

오늘의 접속 장소는 마닐라

▲ 우리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도 FWC 2026에 찾아왔습니다

게임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입장을 기다리던 관객은 대회에 출전한 오빠를 응원하러 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예전에는 가족 모두 〈프리프 유니버스〉를 즐겼지만, 지금도 플레이하는 사람은 오빠뿐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와보니 저도 다시 해보고 싶어졌어요.

대회에 나가는 친구를 응원하러 온 일행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소 게임을 하지 않지만, 친구의 경기를 보러 FWC를 찾았습니다.

FWC에 처음 와봤는데 정말 즐거워요. 저도 한번 게임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FWC를 즐기는 데에는 현재 캐릭터의 레벨도, 마지막 접속 날짜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도 함께 응원하며 현장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 물론 아직은 게임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분도 있었습니다.

마우스 대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경기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중계석에서도 익숙한 게임을 각자의 자리에서 즐겨온 프리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MK4는 FWC에 선수로 출전해 우승까지 경험한 유저입니다. 이번에는 해설을 맡았습니다. 함께 마이크를 잡은 KIPS도 프리퍼였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을 즐기던 일반 유저였던 KIPS는 활발한 활동으로 〈프리프 유니버스〉의 커뮤니티 모더레이터를 맡게 되면서 게임사와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FWC 2026 대회 중계진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한번 말을 시작하면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중계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방송에서 게임 중계를 해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중계하는 건 처음이에요.

게임 이야기를 나누는 건 익숙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현장 중계를 맡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눈앞의 관객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5만 명의 시청자들에게도 경기 상황과 현장의 열기를 전해야 했습니다.

게임을 즐기던 유저가 커뮤니티 운영에 참여하고, 이제는 세계 대회의 목소리가 됐습니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현장은 어땠을까요.

현장의 에너지가 정말 대단했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요. 관객부터 공연까지 정말 즐거웠어요. 현장을 준비한 스태프들 모두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았더라고요. 기대 이상이었어요.
▲ 이번 대회 중계를 맡은 KIPS(좌)와 MK4(우)

그러고 보니, 모두 프리퍼였습니다

행사장을 떠나기 전, 객석을 한 번 더 돌아봤습니다. 무대 앞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니, KIPS가 이야기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던 현장의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프리프 유니버스〉라는 하나의 게임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마닐라에 모았습니다. 경기장에서 직접 마주한 프리퍼들의 모습을 보며, 화면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FWC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 SCHWI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새벽 중계로 응원하던 친구들을 직접 만나려고 텍사스에서 마닐라까지 왔습니다. 오랫동안 목소리로만 알던 친구들과 드디어 얼굴을 마주한 날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음성 채팅을 켜면 친구들의 목소리는 전처럼 헤드셋에서 들려올 겁니다. 다만 이제는 그 목소리로 웃는 얼굴도 같이 떠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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