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 HERITAGE #1. 미르는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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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 HERITAGE #1. 미르는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MIR HERITAGE는 지금의 위메이드를 있게 한 출발점들을 찾아 기록하는 시리즈입니다.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달려 갔던 그 시절의 치열한 낭만과 고군분투.
한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낭만이 지금 위메이드에 어떤 흔적으로 남아있고, 또 어떤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기록은 2000년, 직원 16명이 전부였던 위메이드의 제작실에서 시작됩니다.


미르는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중국의 국민 게임이 한국 개발사 게임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몇이나 알까. 중국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MMORPG 장르를 '전기 게임(传奇游戏)'이라 부른다. 여기서 바로 이 '전기’가 <미르의 전설2>의 중국 서비스명인 <열혈전기(热血传奇)>에서 출발한 표현이다. 이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전기’는 지금까지 하나의 장르명처럼 쓰이고 있다.

<미르의 전설2> 사북 공성전 인게임 화면, 2002, 2007

2000년대 초반, 중국에 PC방 문화가 빠르게 퍼져나가던 시절. 당시 PC방에 들어서면 <미르의 전설2>가 켜져 있지 않은 모니터를 찾기가 더 어려웠다.  사람들은 더이상 사냥만 하지 않았다. PK를 했고, 장비를 빼앗겼고, 다시 복수하러 돌아왔다. 문파를 만들고, 성을 차지하기 위해 모였다. 오늘날 중국 MMORPG에서 익숙한 문법이 된 많은 것들이 그 시절 <미르의 전설2>로부터 퍼져나갔다.

훗날 중국 MMORPG의 한 획을 긋게 될 이 게임은, 놀랍게도 직원 16명이 전부였던 한국의 작은 개발사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초 위메이드 개발실. 직원 16명으로 시작된 작은 제작실에서 <미르의 전설2>가 탄생했다.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출근하던 게임회사

전기아이피 김혜진 이사. 2000년 위메이드 창립과 성장 초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멤버 중 한 명이다.

김혜진 이사는 위메이드 창립 초기 멤버다. 2000년, 회사가 막 설립됐을 당시 합류한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 위메이드는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옛날 회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직원은 16명.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굳이 조직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자리에 없으면 바로 티가 났고, 개발과 기획, 아트와 사업의 경계도 지금보다 훨씬 흐릿했다. 누군가는 회사 안에서 롤러블레이드와 보드를 타고 다녔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오가며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지금이라면 판교의 여느 IT회사에서 떠올릴 법한 장면이지만, 이 이야기는 2000년 서울 보문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에는 스타트업이라는 말도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나 자율적인 업무 환경 역시 특별한 개념이 아니었다. 그저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을 뿐이다. 박관호 의장은 당시 클라이언트 구조와 서버 설계, 기획 전반을 직접 챙겼다. 공방에서 손수 작업하며 개발을 이끌었고, 지금도 초기 코드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당시에는 그것이 특별한 일인지조차 몰랐다. 다들 그렇게 게임을 만드는 줄 알았다. 전설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다음 빌드를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초기 캐릭터 콘셉트 원화. <미르의 전설>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던 당시의 디자인 자료.

CD 한 장으로 중국을 건너다

 <미르의 전설2>가 중국에 진출한 건 2001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PC방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 환경이 빠르거나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게임 하나를 내려받고 설치하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 <미르의 전설2>는 최대한 가볍게 설계됐다.

게임은 CD 한 장에 담겼고 설치는 간단했다. 네트워크 부담도 크지 않았다. 김혜진 이사는 "당시에는 어떻게든 CD 한 장에 담는 것이 목표였다"고 회상한다. 이 선택은 중국에서 굉장한 강점이 되었다. PC방에 CD 한 장만 가져가면 곧바로 게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복잡한 설명도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금세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미르의 전설2> 공식 가이드북. 당시에는 Pentium III 600과 128MB RAM이면 플레이가 가능했다.

여기에 동양 판타지라는 정서가 더해졌다.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이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기, 서양 판타지가 중심이던 게임 시장에서 <미르의 전설2>는 꽤나 센세이셔널한 등장에 가까웠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경험 위에 무협과 전설, 문파와 공성전이라는 익숙한 정서가 더해지자 중국 유저들은 빠르게 그 세계에 몰입했다.

런칭 1년 반 만에 <미르의 전설2>는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68%를 차지했다.

"PC방 이용자의 80%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70·80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추억이 남아 있을까. 당신의 청춘은 어디까지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열혈전기》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Sohu Games(搜狐游戏), 2019

저녁 6시의 햄버거, 새벽 3시의 개발실

저녁 6시. 퇴근하는 중국 직원들이 햄버거를 사주고 간다.

"이거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새벽 3시. 어느새 개발실에는 출장 온 우리들만 남아 있었다.

당시 한국 개발진에게 며칠씩 개발실에서 먹고 자며 일하는 풍경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국은 조금 달랐다. 퇴근 시간이 되면 현지 직원들은 하나둘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

중국 현지화 개발 작업 당시 개발실. 여러 개의 커피캔이 밤늦도록 이어졌던 개발 현장의 흔적을 보여준다.

"우리는 출장 온 사람들이었는데 밤이 되면 한국 사람들만 남아 있더라고요."

김혜진 이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중국 시장에 게임을 서비스하는 법도, 함께 일하는 법도 모두 처음 배워가던 시절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리 오래지 않아 중국 개발실의 풍경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중국 게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곳 역시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됐다.

게임회사 직원들이 CD를 들고 PC방을 돌던 시절

지금은 게임이 출시되면 광고를 집행하고 인플루언서를 섭외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저와 만난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달랐다.

유저들은 모두 PC방에 있었다. 그러니 직원들도 PC방으로 갔다. CD를 들고.

방식은 조금 더 단순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었다. 유저를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게임사가 직접 PC방을 찾아가 유저에게 게임을 설치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 자리에서 게임을 소개했다. 단순히 CD를 나눠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직원들은 PC방에 남아 유저들이 어떤 게임을 하는지, 우리 게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직접 지켜봤다.

전국 PC방에서 열린 <미르의 전설3> 유저 간담회. 출처: 루리웹, 2010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다 보면 관계가 생긴다. 지금은 게임에 커뮤니티 매니저(CM)가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디스코드가 있지만, 그때는 CM이 PC방 한쪽에 함께 앉아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임사와 유저의 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다.

문주가 비행기표를 뿌리고 PC방이 산해진미로 가득차다

"우리 실장님 오셨다!"

PC방에서 열린 유저 간담회를 찾아간 김혜진 이사에게 한 유저가 직접 헤드폰을 씌워주며 외쳤다.

김혜진 이사가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이다.

초기 개발 사진과 기록이 담긴 아카이브 앨범. <미르의 전설>의 시작을 보여주는 기록들.

16명이던 작은 개발사에서 시작해 수많은 성공을 거치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유저, 사람이었다. CD를 들고 PC방을 돌며 발품 팔아 쌓아올린 관계는 쉬이 바라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이야기가 생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게임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문주가 문파원들을 위해 비행기표를 사서 나눠주기도 했다. 대규모 공성전을 앞두고 전국 각지의 문파원들이 한 도시에 모였고, 어떤 문파는 PC방 전체를 빌려 며칠씩 작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지금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하지만 당시 MMORPG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함께 전략을 짜고, 전쟁하고, 함께 성장했다. 게임 안과 밖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았다.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현실에서 결혼까지 이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인연들이 쌓이면서, 나중에는 게임 내 결혼 시스템이 도입되기도 했다.

<미르의 전설2> 인게임 프로포즈 장면. 예나 지금이나, 하트 없는 프로포즈는 상상하기 어렵다.

문주 간담회가 열릴 때면 유저들은 지역 특산물이나 귀한 먹거리를 직접 챙겨오곤 했다.

"실장님, 이것도 드셔보세요."
"우리 지역 특산물인데 꼭 맛보셔야 합니다."

회사에서 행사와 식사를 준비했음에도 유저들은 함께 참석한 문파원들과 회사 관계자들에게 직접 챙겨온 음식을 나누곤 했다. 그만큼 미르를 향한 애정도 깊었고, 유저들 사이의 유대감도 남달랐다. 직접 찾아가 유저들과 시간을 함께하면, 그들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게임 이야기부터 문파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물론 늘 즐거운 이야기만 오간 것은 아니었다. 게임에 대한 다양한 건의와 아쉬움도 쏟아졌다. 게임을 향한 애정이 큰 만큼,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 기대와 아쉬움을 현장에서 듣고, 때로는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 역시 그의 역할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만남과 대화들이야말로 <미르의 전설>을 단순한 게임이 아닌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다고 김혜진 이사는 기억한다.

사람이 오래 머문 곳에는 기억이 남는다.
실제로 당시를 기억하는 중국 유저들은 《열혈전기》를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청춘'으로 회상한다.

"《열혈전기》는 70·80세대의 뜨거운 추억이다. 학생들은 매점에서 산 찐빵을 들고 PC방에서 밤을 새워 게임을 했고, 아이템 거래를 위해 도시를 넘나들며 직접 만났다. 사북 공성전이 열리면 각지의 길드원들이 모여들었고, 어떤 사람은 공성전을 위해 PC방 전체를 빌리기도 했다."
《70·80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추억이 남아 있을까. 당신의 청춘은 어디까지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열혈전기》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Sohu Games(搜狐游戏), 2019

그래서 미르는 무엇을 남겼을까

돌이켜보면 <미르의 전설2>가 위메이드에 남긴 것은 단순히 한 게임의 성공만은 아니었다.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던 시장에 먼저 발을 디디고, 낯선 환경에 부딪히며 배우고, 유저가 있는 곳까지 직접 찾아갔던 태도. 그것은 <미르의 전설>이 남긴 유산인 동시에, 지금의 위메이드가 다시 꺼내봐야 할 기준이기도 하다.

직원 16명으로 시작된 작은 제작실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성공을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성공을 만들었던 선택의 방식을 다시 보기 위해서다.


끝으로 김혜진 이사가 미르 유저들에게

올해로 <미르의 전설2>는 25주년, <미르의 전설3>는 24주년을 맞았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게임이 계속 사랑받고, 여전히 수많은 유저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미르의 전설>은 학창 시절의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청춘을 함께한 기억일 것입니다. 저에게도 <미르의 전설>은 개발자로서의 여정과 성장을 함께해 온 특별한 작품입니다. 작은 제작실에서 시작한 미르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30주년, 40주년을 넘어 오래도록 사랑받는 게임이 될 수 있도록 개발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미르와 함께해 주신 모든 유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함께하겠다는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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