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나요?
애니메이션이든, 만화든, 게임이든 상관없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고, 목소리가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남긴 대사 한 줄이 오래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다리고, 다른 사람의 해석을 찾아보고, 때로는 굿즈나 팬아트까지 들여다보게 됩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캐릭터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캐릭터가 살아가는 세계로 번집니다.
서브컬처 게임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서브컬처 게임은 이 마음을 게임 안에서 조금 더 오래 붙잡아두는 장르입니다. 캐릭터를 만나고, 키우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방식으로요. 플레이어는 캐릭터에게 시간을 쓰고, 그 시간이 쌓일수록 캐릭터는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애착은 그렇게,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오늘날 서브컬처 게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본질 역시 시간과 마음을 들여 캐릭터를 ‘키우는’ 경험입니다.

대표적으로 1991년 등장한 <프린세스 메이커>는 한 명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경험을 게임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능력치를 관리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선택을 반복했습니다.
내가 들인 시간, 내가 결정한 선택, 그리고 겪어낸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이 캐릭터에게 고스란히 쌓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앞의 캐릭터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플레이어의 마음에는 애착이 쌓여갑니다.

필자에게는 초등학생 시절 키웠던 <다마고치>가 비슷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밥을 주고, 잠을 재우고, 잘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상태를 살피곤 했습니다. 제대로 돌보지 못해 다마고치가 죽기라도 한 날에는, 어린 마음에 너무 속상해서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장난감이었지만, 그때의 감정은 꽤 진지했습니다. 매일 들여다보고 돌본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기억되는 캐릭터에게는 시간만큼이나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캐릭터를 키우는 동안 애착이 생겼다면, 그다음에는 그 캐릭터를 둘러싼 이야기가 중요해집니다. 왜 싸우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알게 될 때, 캐릭터는 조금 더 입체적인 존재가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충분히 쌓이면,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느 순간 그 캐릭터가 살아가는 세계 전체로 번져갑니다.
지금의 서브컬처 게임에서 스토리가 단순히 게임의 배경 설명에 머물지 않는 이유입니다.
세계관은 플레이어가 그 세계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힘입니다.
사람들은 캐릭터가 좋아서 게임을 시작하지만, 그 게임을 계속 이어가게 되는 건 결국 그 캐릭터가 살아가는 세계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서브컬처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줘야 할까요.
이미 많은 플레이어들이 수많은 게임과 콘텐츠를 통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나고,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이 세계에 새로이 시간과 마음을 들일 이유가 있는가
<로스트 소드(Lost Sword)>
<메이크 드라마: MAD(Make Drama: MAD)>
<노아(N.O.A.H)>
세 게임은 같은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장르 아래에서도 이 질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하나는 익숙한 전설 속으로 플레이어를 불러들이고, 하나는 거대한 사건보다 캐릭터 사이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하며, 또 하나는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선택을 묻습니다.
로스트 소드, 오래된 전설을 플레이하게 만들다
출시: 2025년 1월 | 제작: 코드캣 | 배급: 위메이드커넥트 | 공식 사이트: 바로가기
<로스트 소드>는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로 대표되는 카멜롯 전설을 바탕으로 합니다. 성검, 기사단, 브리타니아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이 게임은 그 세계를 방대한 서사로 먼저 풀어내지 않습니다.
대신 플레이어를 바로 전투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현실의 인물 ‘에단’이 전설 속 브리타니아로 이동한다는 설정 덕분에, 플레이어 역시 낯선 전설의 세계로 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브리타니아라는 세계에 들어가 기사들을 만나고, 함께 싸우고, 성우의 연기가 더해진 목소리를 들으며 각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캐릭터 사이의 관계도 그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낯설었던 브리타니아는 어느새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무대가 됩니다.
처음부터 모든 설정을 이해해야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캐릭터를 따라 움직이고 싸우는 동안 저절로 익숙해지는 세계입니다. 세계관을 공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면서 감각적으로 익히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진입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하되, 캐릭터와 전투를 따라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세계관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 <로스트 소드>는 이 방식으로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카멜롯의 전설을 지금의 플레이어에게 낯설지 않게 풀어냈습니다.
메이크 드라마: MAD, 관계가 이야기가 되는 세계
출시: 2026년 6월 | 제작: 플러피덕 | 배급: 위메이드커넥트 | 공식 사이트: 바로가기
<메이크 드라마: MAD>의 제목에는 말 그대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개발진은 이 게임이 단순히 캐릭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캐릭터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가길 바랐다고 설명했습니다. 제목만 봐도 이 게임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메이크 드라마: MAD>를 이야기할 때 캐릭터의 강한 비주얼을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라스트 오리진(Last Origin)>의 아트 디렉터로 잘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스노우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만큼, 이 게임은 첫인상부터 특유의 과감한 화풍과 선명한 캐릭터 표현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 과감함은 첫 시선을 끄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메이크 드라마: MAD>는 현대적인 캐릭터부터 악마, 천사, 중세 판타지풍 캐릭터까지 함께 등장할 수 있는 세계를 마련했습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들이 한 세계 안에 들어오고, 각자의 이야기와 관계를 쌓아갈 수 있도록 폭을 넓혔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캐릭터의 외형적 매력에서 시작해, 각자의 사연과 관계로 이어집니다. 눈길을 끄는 일러스트 뒤에는 캐릭터마다의 이야기와 관계가 놓여 있고, 플레이어는 그 관계를 따라가며 자신만의 장면을 만들어갑니다.
이 게임이 말하는 ‘드라마’도 거기서 만들어집니다. 거대한 사건 하나가 모든 것을 끌고 가는 대신, 캐릭터와 가까워지는 시간이 쌓이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넓어지고 관계는 더욱 깊어집니다.
노아, 무너진 세계에서 선택을 묻다
출시: 예정 | 제작: 레트로켓 | 배급: 위메이드커넥트 | 공식 사이트: 바로가기
<로스트 소드>가 오래된 전설을 낯설지 않게 풀어내고, <메이크 드라마: MAD>가 캐릭터와의 관계를 이야기로 만들어간다면, <노아>는 훨씬 어두운 곳에서 출발합니다.
<노아>의 세계는 이미 한 번 무너진 뒤의 풍경인 미래 디스토피아입니다. 디스토피아와 아포칼립스의 감각이 깔려 있고, 캐릭터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웁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캐릭터는 단지 예쁘고 강한 인물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를 통과하는 요원들처럼 보입니다.
<노아>는 전략적 턴제 전투를 기반으로, 플레이어가 전황을 읽고 다음 선택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빠르게 몰아치는 액션보다, 어떤 요원을 앞세우고 어떤 순서로 움직일지 신중하게 판단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그 판단에는 감정도 함께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요원마다 다른 개성과 서사가 있기에, 플레이어는 치열한 전투와 교감의 시간을 거치며 조금씩 마음이 가는 대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를 전장에 세울지, 누구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쓰이는지, 어떤 순간에 개입하고 싶은지가 플레이어의 경험을 바꿉니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요원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들이 버티고 있는 세계의 긴장 속으로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멸망한 세계에서 요원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 그리고 매 순간 내리는 선택의 무게.
그것이 <노아>가 보여주려는 서사입니다.
세 게임이 보여주는 세계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 향하는 곳은 같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나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어느 순간 그 세계에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들이게 만드는 것.
한때 서브컬처는 ‘오타쿠’라는 말로 쉽게 치부되거나, 부정적인 시선 안에 갇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서브컬처는 더 이상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캐릭터를 향한 깊은 애착과 충성도 높은 팬덤은 이미 게임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것을 ‘오타쿠의 마음’이라고 부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취향이 아닙니다. 한때 가볍게 여겨졌던 누군가의 깊은 몰입이, 이제는 당당히 하나의 장르를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